“ 예쁘다, 그 한 마디만큼 단조로움 꽉꽉 담아 던질 수 있을까요! ”
예브게니야 미로노브나 젤렌스카
Yevgeniya Mironovna Zelen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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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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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cm / 61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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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제국령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
제 2사회
✒️ 외형
탄탄하다기엔 흐늘거리고 물렁하다기엔 뻣뻣한 몸이 길쭉하기까지 해서 좋을 게 없다. 키가 어떻게 되시죠? 백 칠십하고도 여덟, 그걸로 부족하면 까치발 들어드릴까? 그렇다고 반질거리는 구두가죽 비명지를 주름 지어가며 키 세우면 얼마 지나지도 않아 휘청거릴 지독한 균형감각이다. 그 어색한 몸뚱아릴 사방 에워싸 덮는 흐릿한 곱슬이 만져지는 모든 아픔들에게서 완충 해 줄 듯, 그래서 길렀을 것처럼 골반 부근까지 폭실히 둘러 막아준다. 그러면 어쩌나, 꼿꼿한 가구 다리에 퍽 하고 발목 박으면 솟아날 짜릿한 감각은 밀빛 타래 길렀든 뜯어냈든 매일반이다.
클로즈업, 얄쌍한 이목구비 끌어모아 짓는 의뭉스러운 웃음 한결같다. 아니, 머리에 먹이 꼈다며 이마 짚고 눈살 찌푸리는 꼴도 잦지. 그렇지만 감정은 웃음과 고통 따라 긋는 선 위를 벗어나고 싶질 않아하므로 매끄러운 낯 언제고 여전하다. 태어나길 이랬지요, 보기 싫은 데엔 더욱 선량해지는 두 눈짝 녹색 찰랑임 기화하여 형형한 것처럼. 그리 바라보자면- 뭐요, 구경도 돈 내고 해야 합니까? 진작 말하지. 새까만 가는 눈썹 곱게 휘어 끄트머리 예쁘게 내려앉아도 시선의 형광이 뚫어질 듯 여전하다. 녹색 술에 불 붙인 양이나 자세히 뜯으면 침침한 반딧불일 뿐인데.
✒️ 성격
의뭉스러운 / 뻔뻔한 유쾌함 / 느긋한, 혹은 얕은
고 유들유들한 웃음은 연유 없이도 잦아 실없어 보인다. 현명한 사람은 겉 너머 내면을 들이다본다지만, 보이기를 넘어서도 실없는 작자란 평이 대세다. 왜, 다정은 오만하고 선의는 부질없는 괴짜라. 호기심 가면 건드리길 주저치 않고선 농담이었노라 실실대고, 그어둔 범주 너머의 인풋은 전부 없는 양 닫아내니 자기객관화 안 된 게 뻔하다. 서툴 바에야 모르고 말지요! 세상에선 지식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는데, 그 중 꼽아보자면, 예쁠 것.
✒️ 기타
- 제국의 북동쪽 변두리에 박힌 렘베르크에 자리한 젤렌스키 가문은 역사가 거의 전무한 편이다. 러시아 출신의 음악가가 코르니에트의 금지옥엽의 손을 얻은 일은 갈리치아의 사교계에 짧은 흥밋거리를 제공해주었지만, 그 이후 이렇다할 사건은 없었으니까. 위로 언니 하나, 아래로 남동생이 있었다던가. 다른 형제는 일찍 죽어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던가. 아, 남동생도 죽었나.
- 코르니에트 보험 회사의 몰락, 이라는 문구를 1면에 올릴 신문은 없어도 경제 잡지를 구독하는 지식인과 자본가 등이라면 얼핏 읽어보았을 법 한 이야기다. 그리고는 까먹었을 것이다, 아마. 갈리치아 내에서는 알아주던 사업이라고는 해도, 우리의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아니, 어쩌면 유럽에서 제일 가난한 지역의 사건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해보았자 귓가를 스쳐지나가기만 할 테니. 그러나 젤렌스키 가족에게는 그 부와 지위의 상실을 뜻하므로 동급생이나 선배들에게 유독 관심이 많다면 작년에 비해 매우 검소해진 그의 생활사 정도는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용케 졸업 학년까지 낼 학비는 남아있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 학교생활에서 모범적이라 할 수 있는 면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 어렵다. 자수는 삐뚤빼뚤, 승마는 말 위에 늘어져 있기가 최대, 사교술이라 칭할 만한 건 번죽대는 꼴 정도. 그래, 펜을 들자면 조금 낫겠다. 가정을 다스릴 때 필요할 셈이나 인사에는 관심도 없어보이지만 글자놀음에는 가늘어진 눈 형형해지고, 철학에는 더더욱 그렇다. 관심가는 과목이라고 선생에게 예쁨받는 건 아니지만.
- 그나마 두각을 발휘하는 과목이 하나 있는데, 음악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들자면 피아노 건반 위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은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교사의 평을 듣자면, 재능은 어느 정도 있으나 과도한 감정을 담은 정열적인 선율을 뽐내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아무렴, 클라라 슈만이 아니고서야 응접실에 손님들을 앉혀놓은 안주인이 갑자기 그런 왈가닥스러운 음악을 선보여서 좋을 게 있을까.
-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 몇몇 학생들만큼 신실하지는 않아도 트집잡을 것은 없다. 예법은 그리스 정교의 것에 가깝지만-우크라이나 그리스 정교회라고는 해도 본인부터가 큰 의의를 두지는 않는 모양.
- 명화 감상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감상을 나누어보는 시간에는 이런저런 들어맞지도 않는 과장된 직유법으로 무마하고는 한다. 표현은 정확해야 한다지, 정확히 표현하자면 예쁜 건 다 좋아한다. 의외로 번쩍이는 보석이나 채도 높은 색상은 선호하지 않는다.
- 가끔은 검은색이나 녹색 리본으로 머리를 묶고, 주머니에는 향내 묻힌 손수건을 적당히 구겨넣는다. 휘적휘적 걷고 있자면 치마 밑으로 보이는 실크 스타킹 색이 워낙 또렷해선지 전혀 정숙해 보이질 않는데, 최신식 화학 염료를 써 조금 낡았는데도 변색되지를 않았나보다. 교복과 구두 외에 걸친 것은 상기한 물품들 외에는 딱히 없다. 아, 당연히 속옷은 입었지요! 의심이라도 갑니까.
그렇지만, 스타킹 가터에 힙 플라스크를 끼우고 스타킹 끝을 그 위로 내리면 어지간해서는 들킬 일이 없다는 사실을 언젠가 밤중에 떠벌리듯 외친 사람에게 좋은 평판을 기대하기란 아무래도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