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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일이 있었다고? 글쎄, 난 들어본 적 없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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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티야 엘지벳 카로이

Dorottya Erzsebet Karol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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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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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cm / 47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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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헝가리 왕국

제 1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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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young beauty wearing a red veil,1880, Gustave Doy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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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형  

 

짙은 청록색 눈은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깊고 잔잔한 호수를 연상시킵니다. 붉은 빛이 돌지 않는 어두운 밤색 곱슬머리는 팔꿈치에 닿을 정도로 길게 길렀습니다. 유순하게 처진 눈꼬리와는 달리 도드라진 턱선과 앙다문 얇은 입술, 숱이 짙은 눈썹은 어쩐지 고집스러운 인상을 풍깁니다. 더위를 많이 타는 탓에 외투까지 갖추어 입는 일은 드물며,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아 간혹 저학년으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  성격  

무심한 / 신중한 / 몰입하는

혹자들은 도로티야가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며 다정하고 입이 무겁다고 할지도 모릅니다만, 그는 사실 자신을 제외한 남의 일에는 일절 관심이 없습니다.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든 소문이나 염문에 대해서도 항상 몇 발자국씩 늦지요. 소문의 중심이 되는 것은 가장 끔찍한 악몽입니다. 기민한 이라면 그의 기계적인 반응이나 진심이 담기지 않은 조언을 눈치챌지도 모르겠으나, 얕고 넓은 교우관계를 유지하는 탓에 알아차린 이는 몇 없습니다. 도로티야는 서두르는 법이 없고 지나치게 신중한 탓에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친구들과 적당히 몰려다니기는 하지만, 조용한 은신처에 홀로 앉아 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만을 늘 바라고 있습니다.   

✒️  기타  

- 카로이가(家)는 헝가리에서 17세기부터 드넓은 푸스타(puszuta, 헝가리 동부의 넓은 온대 초원 지대)를 기반으로 번영해온 저명하고 부유한 로마 가톨릭 백작 가문입니다.

- 19세기 초 헝가리의 중하위 귀족들을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했던 자유주의 민〮족주의가 카로이 가문에서도 유행처럼 퍼지기 시작한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공고히 자리를 지킬 수 있던 까닭은 카로이 가문이 헝가리의 민족 신앙인 칼빈교가 아닌 가톨릭 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제국의 대 헝가리 정책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그들의 세력이 황제의 심기를 거스를 정도로 충분히 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황후 엘리자베트의 친 헝가리 성향이 보호막 역할을 해주었던 것도 차치할 수 없지요.

-  카로이 가문은 친 헝가리 성향의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를 열렬히 흠모합니다. 도르티야의 아버지 알부루쉬 카로이는 이십여년 전 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헝가리 왕위 즉위식이 있었던 날, 황후와 십분 가량 대화를 나누었던 일을 아직까지 저녁식사 자리에 올리곤 합니다. 도로티야 역시 예외는 아니지요. 그는 엉덩이 아래까지 머리칼이 치렁치렁 늘어진다는 황후를 따라 팔꿈치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길렀습니다. 알부루쉬 카로이는 엘리자베트의 황후의 이름을 따와 도르티야의 미들네임을 지었습니다. (엘지벳은 엘리자베트의 헝가리식 발음입니다.)

- 암부루쉬 카로이는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제국의 백작가와 사돈을 맺었습니다. 도르티야의 언니 기지 카로이가 신부 수업의 일환으로 가정교사에게 오스트리아어(독일어)를 배울 때, 도로티야도 함께했습니다. 덕분에 그는 유려하게 오스트리아 어를 구사하지만, 헝가리에서 나고 자란 탓에 그의 발음에서는 어쩐지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도로티야 또한 신부수업을 목적으로 성 헤드비히 여학교에 입학했습니다.

- 도통 남에겐 관심이 없는 도로티야를 압도하는 것은 다름이 아닌 전기와 기관차, 선박용 엔진과 고속 인쇄기 같은 고철덩어리들입니다! 1888년 스페인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는 도로티야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박람회장의 화려하던 전깃불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지고, 자신은 ‘고루한’ 왈츠 음악이 흐르는 제국에 ‘갇혀’버렸습니다. 사교 댄스와 딱딱한 예법, 바느질 따위와 함께요.  

- 도로티야는 퍽 신실한 신자입니다. 잠들기 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침대 위에 양 손을 포개어놓고 기도를 드리는 평화로운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여깁니다.

-만국박람회에 다녀온 이후 제국은 더욱 고루하고, 낡고, 전통에 얽매인 것처럼 느껴지기만 합니다. 그건 아마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뜻이기도 하겠지요. 황궁에서는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진 가스등을 쓴다지요? 화려한 무도회장에서 알록달록한 드레스를 차려 입고 춤추는 여인들은 새장에 갇힌 가련한 카나리아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황제의 제국에서 이런 속내를 입 밖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요. 도로티야는 오늘도 손을 모은 채 앵무새처럼 연습해온 말을 읊습니다. 신이시여, 우리 황제 폐하를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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