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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1년, 우리는 격변하는 유럽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I.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01. 변화하는 시대

 

    1891년, 우리는 격변하는 유럽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한때 서유럽을 뜨겁게 휩쓸었던 혁명의 물결이 이곳 오스트리아까지 밀어닥친 이후부터 오스트리아에서도 온갖 ‘모던한’ 것들이 열풍처럼 유행을 탔습니다. 민족주의, 다시 시작된 팽창 정책, 독일 제국을 선망하는 게르만계 사람들, 폴란드계의 독립 운동, 득의양양하게 힘을 뽐내는 마자르 지주들……. 어쨌든 우리와 크게 관련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복잡한 정치적 문제들은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혹은 오라비와 남동생들의 전유물이니까요.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아주 무관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여학교로 보내졌을지언정 우리 또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딸들인 까닭입니다. 일종의 유행처럼 퍼진 민족주의는 몇 번의 실패한 혁명들을 낳았고, 또 몇 번의 분란을 낳았습니다. 게르만계와 슬라브계, 그리고 마자르계 귀족들의 대립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쳐, 곧잘 어울리던 친구 사이를 서먹하게 만들거나 혹은 지난날의 다툼을 빠르게 종식시키곤 했습니다.

 

    저 서쪽의 프랑스에서는 자본가들이 왕과 귀족을 처형시켰으며 공산주의자들이 붉은 깃발을 휘날린다던가요. 대서양의 수평선에 걸린 태양은 영원히 지지 않은 채 영국을 비추며 그들이 세계 곳곳의 황금을 쓸어모으도록 돕는다던가요. 우리에게는 실은 요원한 이야기입니다. 프랑스나 영국을 방문해본 적이 있는 소수의 여학생들이 그들의 오라비들이 하듯이 거드름을 피우며 그곳의 진보한 과학과 문물을 자랑하고, 독일 제국에 친척을 둔 다른 소수가 서쪽의 ‘조국’을 언급하며 으스대고는 하지만, 그 또한 우리의 것은 아니며 그들의 것 또한 아니지요.

 

    변화의 목전, 우리는 그곳에 서 있습니다. 혁명의 피비린내가 한풀 죽고 팽팽한 긴장 속에서 저마다가 몸을 사리는 이 시대에.

 

 


 

02. 오스트리아 제국, 시스라이타니아

    우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오스트리아 제국령, 헝가리 왕국령,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동통치령으로 나뉩니다. 1863년의 ‘대타협’으로 인해 한 나라로 묶여 있긴 하지만,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언어, 문화, 구성 민족 등이 달라 사실상 서로 다른 두 나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실제로 두 나라는 의회나 시민권 등 법적으로도 분리되어 있거든요! 물론 ‘우리’ 중 대부분은 당연하게도 ‘시스라이타니아’라고 불리는 오스트리아 제국령에 사는 사람들이니 헝가리 왕국은 우선 제쳐두도록 하자고요.

 

    서로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일부 지역부터 동으로는 체코와 폴란드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차지한 우리 오스트리아 제국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자유일 것입니다! 오랫동안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뒤섞여 온 영향이지요. 국교는 로마 카톨릭이지만 신교나 동방 정교를 믿는 것도 허용되어 있고, 유대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이교 숭배자들도 섞여 있다던가요. 사실 법적으로 자유주의나 공산주의 혹은 아나키즘과 같은 “최신” 사상들은 전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프란츠 요제프 1세 폐하께서는 관대하십니다! 어디까지나 가벼운 지적 여흥에 불과한 것을 구태여 금지할 필요는 없질 않겠어요?

 

    뿐만 아니라, 우리 제국의 관리들은 선진적인 정책을 앞장서 들여와 신민들의 생활을 살핍니다. 최근엔 우체국과 기차역마다 공중 전화국이 들어섰고, 제국 각지가 철도와 전신으로 연결된 것은 이미 반 세기 전의 일입니다. 증기로 움직이는 트램이 시내를 오가는가 하면, 공업에 대한 열렬한 투자 덕택에 보헤미아 지방은 유럽의 한가운데 위치한 산업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지요.

 

    유럽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 오스트리아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적인 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제1사회’  와  ‘제2사회’  의 구분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1사회(Erste Gesellschaft)는 오스트리아의 빛나는 궁정 문화를 이룩해 온 전통 귀족 계층, 혹은 공작이나 변경백과 같이 높은 작위를 가진 고위 귀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반면 제2사회(Zweite Gesellschaft)에 속한 계층은 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평민과 귀족 사이에 있다고나 할까요. 유대인임에도 거액을 기부하여 작위를 얻은 경우라거나, 장교나 관료가 됨으로써 상류층에 진입한 사람들, 이름난 예술가나 부유한 자본가 등 신흥 엘리트들이 바로 이 제2사회에 속해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이 생겨난 지는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같은 새로운 구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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