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고요한 세계에도 이따금은 파문이 일기 마련입니다.
III. 불경한 소문들
사실, 학교는 안락하지만 그만큼 꽤 지루하기도 합니다. 얌전한 일부에게는 그렇지도 않겠지만, 또다른 일부에게는 확실히 그렇지요. 물론 우리는 이 지루함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보내졌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기꺼이 규칙적인 일상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요한 세계에도 이따금은 파문이 일기 마련입니다. 때아닌 괴담이 몇 개월째 학교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거든요!
그 ‘괴담’의 시작은 별것 아닌 뜬소문이었습니다. 아직 여름의 뙤약볕이 뜨겁던 어느 주말, 미사를 마치자마자 잘츠부르크 시내로 내려가 군인들의 행렬을 구경한 여학생들이 있었지요. (알다시피 군인과의 짧은 연애는 젊은 숙녀들 사이에서 최근 엄청난 유행을 타고 있습니다. 세상에나, 심지어는 이미 결혼한 숙녀들까지도 그런 놀이에 빠졌다나요?) 그날 저녁에 기숙사로 돌아온 여학생들은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들은 어느 흥미롭고도 오싹한 소문을 귀에서 귀로 바쁘게 옮겼습니다. 바로, 열다섯에서 열여덟 사이의 소녀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야반도주라도 한 거 아냐?” “고작 열다섯 살이 뭘 안다고?” “아니면 납치?”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소문에 대해 더 알고싶어하는 몇몇이 바지런히 주말마다 잘츠부르크 시가지를 오간 끝에, 드디어 사감 선생님과 원장 수녀님의 귀에도 이 사실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저 뜬소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그 괴담에는 생각보다도 더 뚜렷한 실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숲과 시가지를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고, 본래 밤 10시였던 저녁 소등 시간이 한 시간이나 당겨진 끝에, 결국 지난 주부터는 저녁 식사 시간 이후에 기숙사 건물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소문은 끝없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학교 학생들 가운데서도 실종자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니까요. (그럴 리가 있나요? 한 학년에 많아야 쉰 명인데, 누군가 없어졌다면 반나절도 되지 않아 서로 알아차렸겠지요!)
대번에, 몇몇 ‘말괄량이’들이 주변의 학생들을 충동질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한 주 사이에, 선생님들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을 만큼 조용하게, 그러나 적어도 기숙사 건물 하나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는 요란하게, 입소문을 타고 퍼진 하나의 약속이 있습니다.
‘아몬드 열매가 짓무르기 시작하는 저녁에 현관에서 만나.
우리가 정말로 숙녀가 되어 버린 뒤엔 더 이상 이런 모험은 할 수 없을 테니까.’